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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쓴 글

[시] 누가, 서윤후

by jeokyo 2021. 7. 14.

⠀나는 천적이 없다는 듯 울었다 그건 근래의 기쁨이기도 했다 매미나 발정난 고양이도 내게 들리지 않게끔 힘껏 그래 봤자 양도된 이 슬픔은 어디선가 조금씩 모은 침묵이거나 손톱자국이었을 테지만 나는 처음으로 내가 들려오는 장면에 나왔다 고통에 걸신들린 인간의 이야기 울타리를 벗어나 부르기 시작한 노래 나는 작고 낮은 언덕에서 태어나 부풀어올랐다 누가 기다리는 빵 혹은 아직 설익은 배신감 젊음은 내가 자꾸 악몽의 종류로서 실눈과 선잠으로 꿰맨 밤을 뒤집어썼다 격자무늬 카펫을 털면서 더 많은 홀씨를 묻혀온 나를 용서하지 않는다 이중에서 나는 도깨비바늘로 자라났다 꽃과 섬유 사이의 피부는 나를 빚기 위해서 많은 곰팡이를 먹었다 푸르뎅뎅하게 빛나려고 그때 만지던 조물주의 손끝을 혈색으로 살고 있다 대충하지 않으면 멎지 않는 슬픔도 있어서 오늘은 내가 그만 실례를 범하겠다 구슬프다고 하여 친구가 돼주길 바란 건 아니었다 지나친다고 해서 못 본 것은 아니듯 들려오기를 바닥을 구슬리는 훌쩍거림 누추한 심장 소리 목이 쉰 흐느낌


서윤후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문학동네 시인선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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