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녹으면서 컵에 남긴 자국들은 공기의 살갗이라죠
시원하다, 두 손으로 차가운 컵을 쥐고 이마에 문지르며
눈썹이 젖어 서럽다
기쁜 마리아, 이제 없을 여름아
그 순간 나는 내 삶 그만 살자 생각했죠
당신이 더운 쇄골을 따라 훔쳐낼 때 매달린
땀방울 속 빛을 기었어요
순진한 무릎으로 기도를 빛내면 전구가 될까
그러나 마리아, 어둠이 무언가를 보게 할 수도 있나요
벽돌 한 칸 빠진 건물 기둥에서
긴급하지 않은 위태로움 속에서
무너진다, 무너지지 않는다
멍청한 희망으로 시곗바늘을 돌려 도망친 숲속
들짐승처럼 둘러싼 슬픔을 깨달았을 때
다쳐서 흘러나온 사람에서는
우유 냄새가 난다는 걸 알았죠
그날의 빛, 이제 없는 마리아
혼자서도 단단하고 차가운 컵을 쥐면
작고 미끄러운 미간을 만지는 기분
또다시 눈을 뜨면
반짝거리는 눈썹 한 쌍
허공을 문지르며 젖은 햇빛을 닦아주고 싶은 아침
그 순간 나는 내 삶 살 수 없다 생각했죠
가을의 풍부한 사방을 아무리 돌려 세워도
나타난다, 나타나지 않는
마리아,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_최현우(문학동네 시인선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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