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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쓴 글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中

by jeokyo 2021. 4. 9.

은호야, 사랑하는 내 아들아.
아주 오랜만에 눈을 떠 맞이하는 세상은 여전히 깊은 밤이구나, 어둠이구나. 하지만 더 이상 두렵지 않구나.
내 삶이 사람들에게 병든 치매 노인으로 읽히느니 차라리 실종으로 잃어버린 이야기가 되겠다고 이야기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나는 앞으로 근육도 못 쓰고 기억도 더 잃어가고 아무것도 남은 게 없이 죽어갈 테지만 이 또한 버릴 수 없는 내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닫게 되었구나.
은호야 내 인생이 책이 되어 읽힐 수 있도록 내 책에 실릴 내 연보를 네가 써주겠니?
은호야,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 난 믿지 않는단다. 그럼에도 난 은호 너에게 한 권의 책 같은 사람이 되라고 그 말을 남기고 싶구나.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없어도 한 사람의 마음에 다정한 자국 정도는 남길 수 있지 않겠니?
네가 힘들 때 책의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었듯이 내가 은호 너란 책을 만나 생의 막바지에 가장 따뜻한 위로를 받았듯이.
그러니 은호야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한 권의 책이 되는 인생을 살아라. 네 안에 있는 한 줄의 진심으로,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살아.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꾸거나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해도 좋은 책은 언젠간 꼭, 누구에게나 읽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따뜻해지는 것 아니겠니.
세상의 수군거림 속에서도 꿋꿋이 나를 지켜준 은호 너이게도 그런 책 같은 사람이 생기기를, 따뜻한 위안이 내리기를 기도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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