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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쓴 글

[시] 젓가락질 가운데_최현우

by jeokyo 2020. 9. 19.


청춘의 핏물이 쌀뜨물이었노라 가르치는 사람 때문에 밥 먹기 싫어졌다
그날부터 잘못된 젓가락질을 연습했다

식당에 혼자 앉아 있으면
왜 꼭 의자가 하나 더 있는지
같이 있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밥을 먹어도 허기가 돋는지

그럴 땐 저녁을 관찰한다
세상의 혈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리 가는 자의 뒷모습이 묻혀
배고픔을 잊을 때까지

시간은 피의 종류
하늘이 걸쭉해진 밤
골목이 뒷덜미를 드러낸다
내가 지구의 혈액을 조금 빤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

입을 먼저 들이대는 습관은
사랑과 살의를 혼동하는 것
사람이 가르쳐준 예절은
피가 아니라 쌀을 먹는 법

불을 끈다
방구석에 앉아 무릎을 당겨 얼굴을 묻는다
혼자서,
깨물어보고 싶은 사람이 된다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_최현우(문학동네 시인선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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